Rehabilitation Facility

gminhee.egloos.com

포토로그



최동원, 박철순, NPB 원조 괴물 에가와 스구루 스피드 비교 야생야사


출처> 野生野死 야구에 죽고 사는 .. | 스틸라이프


1979년 에가와 스구루의 프로 데뷔전 영상에 찍힌 스피드에 미천한 일빠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무개념 일빠대장 야무영웅이 습관적으로 지껄이는 표현에 적용하면 딱 좆병신 스피드이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전이었기 때문에 에가와 스구루는 최선의 피칭을 했을 것이다. 기술이 떨어지던 1979년 영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에가와 스구루의 직구 구위는 위력적이었다. 오승환을 연상시키는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최고 스피드는 138km, 평균 스피드는 130km에 불과했다.

127km - 129km - 127km - 131km - 138km - 128km - 126km - 126km - 130km - 128km
127km - 123km - 132km - 127km - 126km - 133km - 131km - 125km - 127km - 131km
130km - 133km - 135km - 136km - 136km - 134km - 127km - 135km - 135km


만약 최동원이 이런 스피드를 찍은 영상이 발견된다면, 미천한 일빠들은 축제를 열었을 것이다.


1979년 7월 28일 기사에 최초로 스피드건을 사용한 경기에서 최동원은 140km, 박철순은 135km가 찍혔다는 내용이 보인다.


미국은 161km, 일본은 152km가 최고 스피드라는 내용도 보인다. 미천한 일빠들이 이 기사만 보았다면 "역시 허접한 7~80년대 한국야구"라며 환호했을 것이다.

어쨌든 에가와 스구루의 프로 데뷔전 최고 스피드 138km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기사에는 1979년 NPB 최고 스피드가 152km라고 하는데, 일본 야구사 원조 괴물의 프로 데뷔전 최고 스피드가 고작 138km?

미국, 일본은 80년대초까지 구형 스피드건과 신형 스피드건을 모두 사용했는데, 아마도 구형 스피드건은 종속을, 신형 스피드건은 초속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강속구는 보통 10km 전후의 차이가 났다. 빠를수록 차이가 더 컸다고 한다.

느린 공, 즉 초속이 느린 변화구 등의 구질은 기껏해야 3~4km 정도의 차이밖에 안 났을 것이다. 그러니깐 에가와 스구루의 최고 스피드 138km는 신형 스피드건으로는 150km 가까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1979년에 구형 스피드건이 들어왔고, 신형 스피드건은 1982년에 KBO가 출범하면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동원의 140km, 박철순의 135km는 만만한 스피드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최동원은 구타 사건으로 팀(연세대)을 이탈하여 3개월이 넘는 공백기간 이후에 첫 경기에서 기록한 스피드였다는 사실이다.


최동원은 구형 스피드건으로 145km까지 측정되었다.

아래 기사에서 재일동포 김의명이 142km, 최동원이 145km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김의명의 142km는 신형 스피드건이다.


최초로 스피드건을 보도한 기사에서, 그리고 위의 기사에서 구별이 안 되어 있는 이유는, 당시에는 스피드건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형 스피드건으로 아시아에서 140km를 돌파한 고교야구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동열은 135km, 제 2의 최동원이라 불리던 최계훈은 137km까지 측정되었다고 한다(최계훈은 고교시절의 혹사로 강속구를 잃어버린다).

최동원은 1978년에 가장 강력한 공을 던졌는데, 세계야구선수권에서는 신형 스피드건으로 157km까지 측정되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피드가 161km, 그리고 NPB 최고 스피드가 152km였던 시절에 최동원이 157km를 던졌다는 주장이 믿기 힘들 것이다. 1978년 최동원의 비공식 최고 스피드가 159km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야구팬들은 80년대까지의 쿠바 야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도 100마일 투수가 극소수에 불과하던 70년대에 쿠바 리그에는 여러명이 있었다.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쿠바 에이스의 대회 최고 스피드가 무려 160km까지 측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에 쿠바 야구에는 100마일 투수를 가리키는 "수퍼소닉"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런 쿠바 야구가 자국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소개한 컬럼에서 최동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supersónico lanzador coreano Dong Won Choi

"수퍼소닉(초음속 광속구) 투수" 한국인 최동원으로부터 대형 홈런을 쳤다고 자랑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박철순과 에가와 스구루는 최동원과 비교해서 차이가 컸을 뿐이지, 그들도 아시아 정상급의 강속구 투수들이었다.


1979년 7월 25일 기사에서 박철순이 구형 스피드건으로 139km까지 던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있었고 1982년 KBO에서는 신형 스피드건으로 149km까지 측정되었다고 한다.


박철순이 던진 공 27개 중 슬라이더 4개, 커브 3개를 제외한 직구 20개의 평균 스피드는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145km 전후였다.

1982년 최고 스피드 149km에 근접한 148km까지 측정된 이 경기는 당일 스포츠 뉴스, 그리고 다음날 스포츠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렇다면 고교/대학/실업야구에서의 혹사로 한 물 갔다던 최동원의 KBO 시절 스피드는 어느 정도였을까?

KBO 중계방송에서 스피드건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된 이후부터이다. 당시에 스포츠서울은 관중수와 투수들의 스피드를 소개하면서 야구팬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이는 중계방송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85년 후기리그 잠실야구장에서 스피드건 서비스를 본 기억이 있다. [롯데-청용]전이었고 최동원의 스피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최동원이 결정구로 던진 역회전볼이었다. 140km가 찍혔고 최고 스피드도 145km 정도에 불과했다.

전성기 시절의 최동원은 145km에서 형성되는 역회전볼을 언제든지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140km는 충격적인 스피드였다. 물론 현재의 프레임 계산 방식의 스피드건과 당시의 레이저 방식의 스피드건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2km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실망스런 스피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사실관계가 있다. 최동원은 선수생명이 끝날 정도의 혹사를 3번이나 경험했고, 이전 시즌인 1984년은 그 중 3번째 혹사였다.



그렇다면 막장팀 롯데를 원맨쇼로 우승시킨 1984년의 최동원 스피드는 어느 정도였을까?

1984년은 스피드건 서비스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장 강력한 공을 던진 1978년과 전성기의 절정이었다는 1981년은 추정할 수 있는 내/외신이라도 있지만 1984년은 그런 것도 없다.

그러나 현재의 미디어 기술은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프레임 계산 방식이기 때문에 영상만 확보하면 가능했던 것이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 던진 결정구 스피드를 측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타자는 홈팀 유니폼의 삼성 타자이고, 최동원은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올스타전에서 롯데와 삼성은 같은 팀이므로 최동원의 스피드를 측정한 경기는 한국시리즈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실야구장에서 홈팀 삼성과 원정팀 롯데가 대결할 수 있는 경기는 1984년 한국시리즈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경악할만한 내막이 감추어져 있다. 홈팀이 삼성이고 원정팀이 롯데라는 것은 한국시리즈 5차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동원은 일반적인 야구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1차전 9이닝 (2일 휴식) 3차전 9이닝 (2일 휴식) 5차전 8이닝 바로 이 경기에서의 투구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21세기 KBO의 강속구 투수들이 5일 휴식 등판을 해야 가능한 스피드가 최동원은 2일 휴식 등판에서도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동원은 전성기 시절인 1978~1981년, 5년동안 (세계 메이저 야구대회에서 조차도) 3일 휴식 등판이 사실상 없다. 어깨 부상에서 회복한 1984년 후기리그에서도 3일 휴식 등판은 찾기가 힘들다. 한국시리즈에서도 3일 휴식 등판은 없다.

<참고> 박찬호보다 극적이었던 최동원의 메이저리그 계약


과거에 사용된 구형 스피드건과 신형 스피드건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신형 스피드건 또한 21세기에 사용되는 프레임 계산 방식의 스피드건과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21세기에 사용되는 스피드건으로 박철순과 에가와 스구루의 최고 스피드를 측정하면 150km를 상회하는, 최동원은 160km에 근접하는 스피드가 찍혔을 것이다.

무개념 일빠대장 야무영웅이 걸핏하면 지껄이는 박동희 등장 이전에 한국 야구에 150km 스피드가 없었다는, 심지어 이상훈, 정민태, 정민철의 스피드가 허접했다는 주장이 그래서 개소리인 것이다.

"80년대 KBO 타자들은 140km만 넘으면 한 가운데 들어와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무개념 일빠대장 야무영웅이 80년대 KBO 관련하여 왜곡한 대표적인 혹세무민 사례이다.


김성한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양대에 150km 이상 던지는 피칭머신이 있었는데, 최동원을 공략하기 위해 연세대 경기를 앞 두고 한양대에 가서 그렇게 훈련을 했어도 최동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박찬호 국내 (두산전)데뷔전에서 해설을 했던 마해영도 언급한 바 있듯이, "박찬호 선수를 처음 상대한 건 대학때이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강속구였다. 하지만 나는 잘 친 편이다. 박찬호 선수가 대학때 기록은 좋은 편은 아니다."

투수에게 스피드는 전부가 아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성도이기 때문이다.

<참고> 류현진이 경험한 쿠바와 조계현이 경험한 쿠바는 이만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