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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도핑테스트 양성반응과 구로다 히로키의 경이로운 진화


2009년 5월 마해영의 회고록(야구본색)은 파문을 일으켰다. KBO 선수들의 약물복용을 다룬 내용이 있었고, 이 때문에 마해영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마해영을 변호해주기 위해 야구인 출신 기자가 쓴 기사는 또 다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박찬호의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이 감기약 때문이었다고 일단락되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약물시대에 전성기를 보낸, 그리고 100개가 넘는 투구수에도 155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졌던 세기의 우월자 박찬호가 약물복용을 했을리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7~80년대 메이저리그는 약물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일명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이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한 미국이라도 임상실험 한계가 있었고, 복용후에 열량을 전부 소비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적합한 약물이 아니었다.

선발투수 비중이 컸던, 그리고 이기는 야구를 했던 7~80년대 메이저리그는 치열했다. 타자들은 피로도 경감과 집중력에 효과가 좋은 암페타민, 투수들은 내구력을 지속시키는데 효과가 좋은 에페드린을 주로 사용했다(이닝이팅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80년대 KBO 투수들도 에페드린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80년대는 세상에 장벽이 존재했고, 군사정권이었던 한국은 장벽이 더 높았다. 현재까지도 KBO에서 에페드린이 사용되었다는 정황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국만큼 마약류 제한이 많은 국가도 드물기 때문이며, 세계화 이후에도 그런 정책은 유지되었다.


한국 정부가 마약에 대해서 유난히 엄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마약 문제가 심각했고 성병 환자가 넘쳐났었다. 그리고 이런 문란한 풍토는 516혁명 이후에나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마약류 약물인 에페드린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불가능했어도, 일명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선진국 캐나다가 이 정도였다.
냉전시대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고, 군사정권이었던 한국은 훨씬 엄격했다. 심지어 양담배(외국 담배) 흡연도 불법이었다.


그렇다면 일명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은 언제 한국에 들어왔을까? 그리고 KBO 선수들은 언제부터 약물을 사용했을까?


1985년부터 냉전의 균형이 급격하게 기울어지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은 "공산주의는 끝났다"고 예언했고 1986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1986년 양담배(외국 담배)를 시작으로 1987년부터 일명 스테로이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이론적으로는 KBO 선수들이 스테로이드 효과를 처음으로 경험한 시점은 1988년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대해 무지한 인터넷 양아치들은 최동원의 약물복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동원의 경이로운 연투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닌 스플릿 계약이었다는 허위사실 유포도 부족해서 약물 타령까지 했던 것이다.

<참고> 최동원 메이저리그 계약서 - 김형준의 어설픈 해석



기반 지식을 갖추었으니 (박찬호)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의 진실을 알아보자!


이런 내용이다. 박재홍과 최원호는 스테로이드(진통제), 박찬호는 에페드린(감기약)이 문제였고, 감기약을 조제한 대학병원에 문의해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소설같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제주 합숙훈련 캠프서 추운 날씨 탓에 코감기에 걸렸던 박찬호는 감기약을 먹은 적이 있다. 대한야구협회 김병우전무는 "4강이 결정되기 전 대회조직위원회에 약성분의 내역을 밝히는 증빙서를 첨부해 자료를 제출하면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협회차원에서 급히 본국에 연락해 자료를 부탁해놨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도핑검사시에 최근 복용한 약물을 기재하거나,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하였다고 해서 절대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료는 검사실 분석과정이나 청문회에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도핑방지규정에 규정된 소정의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 부상이나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하게 금지약물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목적사용면책 또는 소급 치료목적사용면책을 승인받아야 비정상분석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

소설같은 기사가 왜 나왔을까? 어쨌거나 박찬호가 감기약을 복용한 시점을 알아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14일부터 17일간, 즉 11월 30일까지 제주도에서 합숙훈련을 했고, 그 기간동안에 박찬호가 감기약을 먹었다는 것이다.


"26일 자체 청백전때는 최고 148km까지 올라갔다" 늦어도 25일에는 회복되었고, 더 이상 감기약을 먹지 않았다고 봐야 하며, 도핑테스트를 최초 보도한 기사의 날짜가 12월 10일이므로 최소로 계산해도 2주일간의 공백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감기약에는 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박찬호의 경우에는 양성반응이 나올 수가 없다. 관련하여 도핑테스트 안내서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감기치료제들은 에페드린류를 포함하고, 이러한 물질들의 과다한 복용은 금지된다. 이러한 약물들은 "경기전 48시간 내에 중단"하여야 하고 허가된 처방약물로 대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자체조사 결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그리고 마해영을 변호해주기 위해 야구인 출신 기자가 쓴 기사 내용중에, "자체적으로 검사한 결과 2명의 선수가 양성반응을 보여 메달이 박탈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며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추측이지만, (박찬호가 도핑테스트에 선정될 것에 대비한) 감기약 때문이었다는 여론조장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제주 합숙훈련 캠프서 추운 날씨 탓에 코감기에 걸렸던 박찬호는 감기약을 먹은 적이 있다. 대한야구협회 김병우전무는 "4강이 결정되기 전 대회조직위원회에 약성분의 내역을 밝히는 증빙서를 첨부해 자료를 제출하면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협회차원에서 급히 본국에 연락해 자료를 부탁해놨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직전에 청와대에서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은 국가적인 영웅(?)이었기 때문에 만약에라도 박찬호가 도핑테스트에 선정되었다면 심각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만 23세 투수의 내구력 한계가 뚜렷할 때, 문제점을 해결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일반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해결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박찬호 전성기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약물시대의 위대한 업적?


인간도 엄연히 짐승이며, 짐승의 일생은 환경에 따른 패턴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포츠에서 특정 선수가 패턴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외부 변수가 개입되었다는 명백한 정황이며, 외부 변수는 99% 약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는 꼭 금지약물이 아니더라도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많은 보조제가 개발되어 있지만, 21세기초까지만 해도 외부 변수는 99% 약물을 의미했고, 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찬호의 경우(내구력 문제)처럼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약물 개입의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핑테스트가 유명무실했다는 허점이 있었다.

도핑테스트가 강화된 현재는 비시즌 기간동안 약물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신개념 조작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구로다 히로키"이다.





구로다 히로키의 만 30~32세(2005~2007년) NPB시절 탈삼진 하이라이트 영상이며, 패스트볼은 145~146km에서, 스플리터와 싱커는 140km 이하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정구 스피드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패스트볼 최고 스피드는 150km).

만 33~37세(2008~2012년)의 구로다 히로키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는 진화를 했던 것이다. 스피드(평속) 데이타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구로다는 "구라다"로 진화했던 것이다!

[2008년] 패스트볼 92.0마일 - 슬라이더 83.7마일 - 스플리터 87.2마일
[2009년] 패스트볼 92.5마일 - 슬라이더 84.4마일 - 스플리터 87.4마일
[2010년] 패스트볼 92.3마일 - 슬라이더 84.1마일 - 스플리터 87.3마일 - 싱커 91.7마일
[2011년] 패스트볼 92.0마일 - 슬라이더 84.3마일 - 스플리터 87.1마일 - 싱커 91.9마일
[2012년] 패스트볼 91.8마일 - 슬라이더 83.8마일 - 스플리터 86.4마일 - 싱커 92.0마일


이를 인터넷 양아치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구로다 히로키는 메이저리그에서 진화했으며, 현 아시아 최고 투수"


사실, 에페드린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약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심각한 부작용이 없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내구력 문제점을 에페드린으로 해결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한다거나 우월자로 둔갑할 수 있는 묘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0년대부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에 냉전의 균형이 기울어지면서 공산권의 경이로운 약물 기술이 전세계에 전파되었고, 그 여파로 스포츠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구로다 히로키 따위는 감히 들이댈 수도 없는, 아시아 야구사에서 비슷한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 선구자적인 영웅이 존재했으니, 그가 바로 일명 "호모좆데오"라 불리는 "노모히데오"이다!

<참고> 아시아 야구사 역대 최고 이무기 - 노모히데오(야무영웅)


이무기가 용이 되는 해괴망측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도 의심하지 않는 순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우월자들과 절세미인(여신)들이 대량 양산되는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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