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은 선동열이 전문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첫 시즌이다.
93시즌에 선동열은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만 해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았다. 93시즌의 해태는 17승의 에이스 조계현을 비롯하여 송유석(11승), 이대진(10승), 이강철(10승), 김정수(10승) 등의 특급 투수진을 갖춘 투수왕국이었다.
93시즌의 선동열은 KBO 최고 마무리 투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새끼 선동열"로 불리던 김경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동열 - 49경기 10승 3패 31세이브 126이닝 (0.78)
김경원 - 48경기 9승 3패 23세이브 129이닝 (1.11)
선동열의 기록이 김경원보다 좋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경원이 OB에 입단할 당시에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제 2의 선동열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다. 신체 조건은 물론이고 구속/구위, 변화구, 투구 패턴 등의 모든 면에서 선동열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OB팬들은 실망하게 된다. 김경원은 선발로 등판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투구 내용을 보여 주었고 이어 롱-릴리프 등의 불펜으로도 기용되었으나 마찬가지로 기대했던 만큼의 투구 내용은 보여주지 못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82년에 KBO가 출범하면서 당시에 소년이었던 어린 선수들에게는 목표가 생겼고 프로야구 역사가 10년이 넘으면서 축적된 교수법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기술을 보유한 선수들을 키워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수들이 91년부터 KBO에 입단하기 시작하면서 9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80년대에는 해태에만 몰려있던 슬러거들이 92년부터는 전체 구단에 골고루 분포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타순 한 바퀴가 돌고나면 완급 조절 능력이 떨어졌던 김경원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직구+슬라이더의 원-타이밍 피칭)의 한계 때문에 여지없이 맞아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OB 코칭스태프는 김경원을 마무리 투수로 활용하게 되는데, 이 결단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기사 내용 중에 보면,
선발로 나서며 프로의 방망이 맛을 본 김경원은 시즌 중반 연패의 시련을 겪으며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해야했다. 마무리 전문 투수로 거듭난 것이 그것이었고 윤동균 감독의 신뢰로 훌륭히 성공했다.
김경원이 마무리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슬라이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원의 커터성 슬라이더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다면 마무리 김경원과 마무리 선동열의 맞대결이 이루어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와 관련하여 08년에 김경원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무조건 선동열 위주의 기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포츠 언론이 이런식이었으니 선발 투수 시절의 선동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선빠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스포츠신문 1면을 보니까 선(동열) 선배 얼굴 위에 '선동열 패'라고 써진 게 아닌가.
김경원은 93년 이후에 개인적인 문제로 오른손 신경이 다치면서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고, 그렇게 사라지면서 KBO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천재 투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선동열이 93시즌에도 선발 투수였다면 어땠을까?
과거 해태처럼 슬러거들이 각 팀에 상당수가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선동열은 94년에 다시 선발 투수를 꿈꾸다 망신을 당하게 된다. 80년대는 최강팀 해태에서 해태 타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도 된다는 이점 때문에 기록 관리도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94년 선동열 - 27경기 6승 4패 12세이브 102이닝 (2.73)
그나마 저 기록도 철저하게 관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심한 언론은 기가막힌 논리를 개발하게 되는데, 더욱 황당한 것은 훗날 선동열은 자서전에서 그 기막힌 논리에 장단을 맞추기까지 한다. 박찬호의 다저스 계약 때문에 야구 할 맛이 안 났다는 것이다.
<참고> 선동열 자서전의 박찬호 유학 편법은 소설
스포츠 언론에서 무조건 선동열을 과대포장한 기사들만 썼기 때문에 선발 투수 시절의 선동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gminhee같은 선빠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mgm1981이 바로 선빠들에게 정보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gminhee이고, 아이디에서 1981은 gminhee가 밝힌 바 있듯이 자신의 생년을 표시한 것으로 추측된다. 즉 gminhee는 선발 투수 선동열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동열이 선발 투수로 풀-타임 활약한 기간은 1986 ~ 1991년이다. 따라서 1981년생은 만 5 ~ 10세 사이에 선발 투수 선동열의 투구를 보았다는 것이 된다.
<참고> 1986/87년의 특급 에이스 선동열
유언비어가 널리 퍼지고 이를 계속 방치하면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된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자가 자신이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런 주장(정말로 선동열의 투구를 제대로 본 적이나 있는 사람들인지?)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저런 블로그를 홍보해주는 포털은 언제나 정신을 차릴 것인가?
* gminhee는 2012년에 sundongyol로 아이디 세탁을 했고, 네이버는 sundongyol 블로그를 검색 상위로 홍보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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