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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20승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는 선동열의 거짓말 야생야사


출처> 野生野死 야구에 죽고 사는 .. | 선동열은애기야애기


18승을 올릴 때 경기 중간에 나가 구원승을 올렸더니 일부 언론에서 다승왕 밀어주기라며 시비를 걸었다.

출처> 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0830002707&subctg1=05&subctg2=00


광주일고 후배이자 룸메이트인 이강철이 5회 1사까지 잘 던지고 있었는데 선동열이 5회 1사 이후에 등판해서 9회까지 던져 이강철의 승리를 가로채면서 18승을 따낸 적이 있다.





선동열이 1991년에 20승을 스스로 포기한 것처럼 거짓말을 해서 예전 인터뷰를 올립니다. 1991년 9월 19일 스포츠서울입니다.

- 왜 자진 강판했나.

이상대의 타구를 잡으려고 껑충뛰어 올랐다가 내려서는 순간 허리가 삐끗했다. 3년 연속 20승도 중요하지만 한국시리즈, 한/일 수퍼게임등 대사를 앞둔터라 부상이 악화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상윤 코치에게 교체를 요청했다.

- 김정수가 2회부터 몸을 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혹시 조작된 18승(?)이 끼여있는 20승에 대한 회의감 때문은 아닌지.

그렇지는 않다. 18승으로 인해 물의를 빚은 것은 사실이지만 3년연속 20승마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조규제에게 쫓기고 있는 방어율 때문이라는 의심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자기 입으로 분명히 부상때문에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말을 바꾸면 안됩니다.
20승에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예 등판을 하지 말았어야죠. 20승 할 마음이 없었는데 왜 등판을 합니까?
그리고 제 발이 저리는가 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방어율 때문에 내려온 건 아니라고 하네요.

당시 상황을 말하자면 9월 17일까지

선동열 200.0이닝 35자책점 1.575
조규제 139.2이닝 26자책점 1.675

방어율 경쟁이 박빙이었습니다.

선동열이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지 않고 조규제가 남은 2경기에서 8.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는다면 조규제는 자력으로 방어율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선동열 입장에서는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주로 구원으로 등판을 했지만 종종 선발로도 좋은 투구를 했던 조규제였기에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동열이 마지막 경기에 등판해서 3이닝만 던지고 내려가는 바람에 조규제의 방어율 1위는 무산됩니다. 남은 2경기에서 1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면 방어율 1위가 될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완봉승에 추가로 2.1이닝을 더 던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사실상 불가능하죠.


결론은 이겁니다. 선동열이 3회만 던지고 내려온 것은 방어율 1위를 확실히 지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처음에는 20승과 방어율 1위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자칫 난타를 당하면 방어율 1위를 그냥 조규제에게 넘겨줄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했겠죠. 그래서 상황을 본 겁니다.

3회까지 던졌는데 무실점입니다. 여기서 내려오면 조규제가 연장 11.1이닝 완봉을 하지 않는 이상 방어율 1위는 확정입니다. 마침 허리까지 삐끗합니다. 무리하면 방어율 1위와 20승 모두 날라갈 수 있습니다.

(선동열이 4회 올랐다가 3자책을 한다면 방어율이 1.68, 조규제는 1.675로 1위) 20승이 아쉽기는 하지만 7년 연속 방어율 1위는 확실하니까 큰 미련두지 않고 마운드에서 내려간 겁니다. 초반에 실점해서 방어율 1위가 위태롭거나 조규제에게 넘어갔으면 달랐겠죠. 방어율을 만회하거나 20승이라도 잡기위해 계속 던졌을 겁니다.


후배의 승리를 가로챈 것은 추잡한 과거입니다. 그럼 가만히 입다물고 있어야죠.
시간이 지나간 틈을 이용해 추잡했던 과거를 미화시키려고 하는군요.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가 봅니다.


<참고> 최동원, 선동열 맞대결이 원래 4차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