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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선동열은 21세기 KBO에서도 특급 에이스? 컬럼


한국 프로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데에는 82년 ~ 84년까지의 한국시리즈가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그 내막에는 좁아진 스트라이존에 의한 화끈한 홈런쇼가 있었다.

볼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에 한국시리즈는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불가피하게 심판들은 좁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국시리즈는 화끈한 타격전으로 전개 되었고 이변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야구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82년 한국시리즈는 박철순이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없는 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OB의 홈런포에 삼성이 무너졌고, 83년에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청룡의 우세를 예상했으나 해태의 슬러거들에게 청룡은 힘도 못 쓰고 무너지게 된다.

특히 KBO 역사상 가장 명승부였던 84년 한국시리즈는 최동원의 원맨쇼로 끝났는데, 이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스트라이크존에서 찾을 수 있다. 슬라이더에 의존하지 않았던 최동원에게 좁은 스트라이크존은 별 문제될 것도 없었고 오히려 전력 투구를 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투구를 할 수 있었으나, 삼성의 경우에는 김일융을 제외하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강력함과 이닝 소화 능력에서 최동원에게 훨씬 뒤졌던 김일융이 훨씬 적은 이닝을 소화하고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최동원의 진면목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84년 한국시리즈만큼 적합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강력한 공을 던진 6차전까지의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글에서는 가장 형편없는 구위를 보여준 7차전의 투구 내용만을 다룰 것이다.

하지만 7차전에서 보여준 투구 내용에는 최동원의 제구력과 경기운영 능력,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 등, 현재의 야구팬들에게는 생소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오히려 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유두열이 역전 3점 홈런을 쳤던 8회초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동영상 초반에 김일융이 김용희에게 던진 몸쪽 공이 볼로 선언된 것을 볼 수 있다. 스트라이크존이 가장 좁았다는 09년보다 더 좁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25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가 가운데로 몰리면서 안타를 허용한다.

1분 25초를 지나면서 김용철에게 던진 몸쪽 커브도 볼 판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3분 10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도 가운데로 몰리면서 연속 안타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1사 1, 3루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결국 1분 20초를 지나면서 유두열에게 던진 공이 또 가운데로 몰리면서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좁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지칠대로 지쳐있는 최동원은 과연 어떤 투구를 했을까?

4분 10초를 지나면서 최동원이 가운데 높은 직구로 파울 플라이 범타를 유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볼로 배트를 이끌어 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최동원은 높은 코스의 제구력이 매우 뛰어난 투수였다).

4분 40초가 지나면서 함학수에게 던진 바깥쪽 커브가 볼로 선언되었고, 4분 55초를 지나면서 던진 높은 유인구가 힘 없이 들어가면서 3루타를 허용하게 된다. 최동원이 말도 못하게 지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서 5분 30초 이후의 느린 화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가 3루타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5차전에서도 롯데가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기록되지 않은 수비 실수가 3루타로 연결되었고, 안타 그리고 또 다시 실책이 나오면서 역전패를 당한 바 있는데,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롯데의 부실한 수비는 오랜 전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5차전에서의 최동원의 실질적인 자책점은 단 1점이며, 이 또한 기록되지 않은 실책과 기록된 실책이 한 꺼번에 나오면서 동점을 허용한 것이므로 정현발에게 결승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3차전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볼 판정으로 최동원은 추가 1실점하면서 동점을 허용했고, 9회말에 극적인 끝내기 안타가 나왔다.
 



- KBO 역사상 가장 스트라이크존이 좁았던 84년 한국시리즈(3차전) -


5차전에서도 기록되지 않은 실수와 기록된 실수가 한 꺼번에 나오면서 2점을 허용했고 결승 홈런을 맞았다. 그러므로 6차전에서 삼성이 승리했다 하더라도 2일 휴식후에 7차전에 등판한 최동원은 여전히 강력한 공을 던졌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볼 판정과 롯데의 부실한 수비가 아니었다면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4승에 36이닝 3자책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겠으나 극적인 한국시리즈는 연출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KBO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최동원의 불멸의 투구가 아닌 롯데의 부실한 수비였다는 사실이다!





1분 5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가 바깥쪽으로 급격하게 예각이 형성되면서 절묘하게 떨어졌고 오대석은 히팅포인트를 놓치면서 배트 중심에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1분 50초를 지나면서 던진 몸쪽 커브는 볼 판정을 받았지만 코스 자체는 절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최동원이 지쳐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더욱 강력한 회전이 가해졌을 것이며 스트라이크 코스로 떨어졌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분 25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 유인구였다. 볼 카운트 2-3에서 던진 유인구인데, 그 어떤 타자도 배트가 안 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예리한 커브였다. 배트가 나오는 순간에 급격하게 볼로 꺾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첫째 >

우완 투수가 우타자의 바깥쪽 - 몸쪽의 순서로 직구도 아닌 커브로 코너워크 제구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제구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한데 최동원은 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10일동안 39이닝째 투구하는 와중에 그런 제구를 했다는 것인데, 이는 훨씬 적은 이닝을 던진 김일융이 계속된 실투로 연속 안타와 역전 홈런까지 허용했다는 점과도 비교된다.

3개의 공을 던지면서 우타자의 바깥쪽에 절묘한 제구를 했고, 이어서 몸쪽에 절묘한 제구를 했으며, 마지막에는 볼 카운트 2-3에서 바깥쪽에 절묘한 유인구를, 그것도 커브로 구사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80년대에 "다저스 전법"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피칭을 다룬 부분에서 최동원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투수의 체격 조건은 우선 커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한 때 키 크고 덩치 좋은 선수들을 찾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체격의 크기는 투수의 능력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다. 투수는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강속구 투수
2. 제구력 투수
3. 변화구 또는 마구 투수

'강속구' 투수는 아주 빠른 직구와 아주 빠른 커브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무기이다.

그리고 이런 설명이 덧붙여 있는데,
"롯데의 최동원 투수는 스피드와 제구력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투수이다."


< 둘째 >

동영상을 세심하게 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최동원이 딜리버리를 변경하는 피칭, 즉 오버드로와 쓰리쿼터를 혼합하는 투구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다시 보면 보일 것이다).

딜리버리를 변경하면서 완벽에 가까운 제구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건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딜리버리를 변경하면서 제구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실전에서) 수없이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고 위기에서 진화한다.

대부분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무브먼트 야구가 가장 먼저 발달한 리그는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쿠바리그이다. 쿠바는 70년대부터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했고, 타자들의 파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투수들이 변칙 투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쿠바 투수들은 어릴 때부터 딜리버리를 변경하는 변칙 투구에 익숙해 있는데, 최동원의 경우는 다르다. 어릴 때부터 딜리버리를 변경하는 변칙 투구를 했던 투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78년 국제 대회에서 처음 경험한 쿠바 투수들을 참고하여 스스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최동원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동영상을 보면 4분 10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는 쓰리쿼터 투구로 바깥쪽에 절묘한 코너워크로, 4분 35초를 지나면서 던진 커브는 오버드로 투구로 전혀 다른 딜리버리 투구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완벽한 제구를, 그것도 직구가 아닌 커브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제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5분 25초가 지나면서 갑자기 몸쪽 직구를 던졌고, 6분 5초를 지나면서 볼 카운트 2-2에서는 바깥쪽 유인구로 커브를 던지자 장태수는 겨우 커트해내고 있다. 최동원이 지쳐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장태수는 헛스윙을 했을 것이다.

이어서 6분 40초를 지나면서 오버드로 투구로 높은 직구로 유인구를, 7분을 지나면서 다시 동일한 코스로 결국에는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두 번째 유인구는 쓰리쿼터로 라이징 패스트볼 효과를 준 것이다.

1구 - 바깥쪽 커브 (쓰리쿼터) 스트라이크
2구 - 바깥쪽 커브 (오버드로) 볼
3구 - 바깥쪽 직구 (오버드로) 볼
4구 -    몸쪽 직구 (오버드로) 파울
5구 - 바깥쪽 커브 (오버드로) 파울
6구 -    높은 직구 (오버드로) 볼
7구 -    높은 직구 (쓰리쿼터) 헛스윙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10일동안 5경기에 등판, 무려 40이닝째 던지면서 이런 현란한 피칭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 캐나다 한국일보 기사 내용중에서 ]

그 당시 왜 최동원을 데려오려고 하냐고 물으니 “완벽한 제구력(Perfect control) 때문”이라고 하던 엘리엇 왈리 선수개발팀장의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완전한 야구를 추구하던 최동원 선수가 그 꿈을 못 이룬 채 먼저 갔다. 어쩌면 이 근시안적이며 편협한 한국야구가 최 선수의 꿈도 접고 수명을 단축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뒤늦게나마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빈다.

<참고> 양키스, 다저스를 물리치고 최동원을 스카웃 한 블루제이스






이번엔 선발투수 선동열에 대해서 알아보자.


선동열이 선발 투수로 등판한 경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을 던진 경기는 1988년 한국시리즈 1차전인데,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86년에 언론으로부터 국보급 투수라는 찬사를 받았던 선동열이었지만 스크라이크존이 좁아지는 포스트시즌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선동열 자신도 벼르고 등판했던 경기가 바로 88년 한국시리즈 1차전이었다.

실제로 이전까지 선동열이 두 차례의 포스트시즌에서 거둔 성적은 겨우 2세이브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 3패 1세이브나 마찬가지였다.

88년은 올림픽 때문에 조기에 시즌이 종료되었고, 1개월 이상 컨디션 조절을 하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한 선동열은 선발 투수로 활약한 기간 동안 가장 강력한 공을 던진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8회 1사 1루에서 강판될 때까지 무려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5초를 지나면서 유승안에게 던진 직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는데, 84년 한국시리즈에 비해서 넓은 스트라이크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40초가 지나면서 커브로 유승안을 삼진으로 잡는데,

지난 두 차례의 포스트시즌에서 좁아진 스트라이크존에서 슬라이더가 계속 커트 당하면서 힘든 피칭을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등판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스트라이크로 선언된 커브도 84년 한국시리즈에 비해서 넓은 스트라이크존이 적용되었다).

계속해서 동영상을 보면 1분이 지나면서 장종훈에게 커브를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커브의 품질이 상당히 저질이라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선동열의 커브는 강력한 직구를 바탕으로 하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 효과 외에는 없었다).

사실 선동열의 투구 패턴은 분석할만한 내용이 없다. 구위로 타자들을 압도했던 가장 대표적인 투수가 선동열이었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준다면 8 ~ 90년대의 외소한 타자들이 나무 배트로 극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구위를 보유한 투수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86년을 제외하고는 로테이션을 감당할 수 없었고, 짧은 기간에 펼쳐지는 포스트시즌에서 그리고 좀 더 좁아진 스트라이크존에서 선동열은 항상 체면을 구겼던 것이다.

<참고> 선발 투수 선동열은 특급 에이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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