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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은 군산상고 시절부터 급이 다른 투수였습니다.


출처> 野生野死 야구에 죽고 사는 .. | 파르피자


그 당시 최고 투수는 군산상고의 조계현과 부산고의 김종석, 천안북일고의 안성수, 세광고의 송진우를 꼽을수 있을 것 같군요.
조계현, 송진우는 84학번이고 김종석, 안성수는 83학번입니다.

82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2학년이던 조계현과 3학년이던 안성수가 맞대결을 하게 됩니다.
조계현은 2학년때부터 이미 고교 최고의 우완 투수로 명성을 누리고 있었고,
3학년이던 안성수도 조계현 못지않은 투수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죠.

82년은 김종석의 부산고가 대통령배를, 조계현, 이동석, 장호익, 백인호의 군산상고가 청룡기와 봉황기를, 아직 2학년이던 송진우가 에이스로 있었고 최동창, 노제룡, 박희종이 있었던 세광고가 황금사자기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미 조계현은 81년 대통령배에서 군산상고를 우승시켰고, 82년에는 청룡기와 봉황기를 우승시켰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81년에 시작됩니다.

81년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조계현의 군산상고가 안성수의 북일고를 5대 3으로 이깁니다.
조계현이 안성수에게 1회부터 2루타를 날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듬해 82년 대통령배 16강전에서 재대결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는 조계현과 안성수의 피말리는 투수전으로 승부가 전개되다 9회말 안성수가 조계현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치면서 북일고가 1대 0으로 승리합니다.

대결의 마지막은 82년 청룡기입니다.
북일고 마운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안성수에 비해 군산상고는 이동석(예전 빙그레시절 선동열과 맞대결을 펼쳐 무사사구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투수입니다. 당시 실책을 한 선수가 장종훈 이었죠.)이 평소에 던지다가 위기 상황에서 조계현이 등판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결승전은 치열한 투수전 끝에 연장 12회까지 1대 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합니다.
제가 본 고교야구 중에서 가장 숨막히는 투수전이었습니다. 결국 그 다음날 야간 경기로 재경기가 펼쳐집니다.
전날 12회를 홀로 책임진 안성수에 비해 이동석과 마운드를 분담했던 조계현은 그나마 조금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안성수는 초반부터 두들겨 맞았고, 군산상고가 9대 5로 승리하게 됩니다.

이날의 후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 졸업생 중에 최대어였던 안성수는 한양대에 진학한 후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빙그레에 입단해서도 별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은퇴합니다. 조계현도 고교시절의 혹사로 결국 탈이 나서 파이어볼러에서 팔색조 변화구 투수로 변신하여 프로에서도 성공을 이어갑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조계현은 스타일은 다르지만 승부근성과 저돌성은 최동원의 후계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 81년 2월 5일 동아일보 ]



<참고> 슈우트(투심, 싱커)의 달인이었던 최동원







- 조계현, 최동원의 슈우트(싱커) 영상 -


안타까운 일은 그 당시 정말 대단한 스터프를 가지고 있었던 안성수가 혹사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투수들이 한 두명이 아니겠지만 청룡기 결승전의 숨막히는 드라마를 선사했던 투수 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갔기에 안타까움이 더 커집니다. 김건덕과 더불어 진한 아쉬움이 남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안성수 선수는 몇 년전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기에 더욱 그 아쉬움이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