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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투수 선동열은 특급 에이스가 아니었다. 반론


불펜 투수 선동열은 정말 대단했고 현재의 KBO에서도 충분히 특급 마무리로 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선발 투수 선동열은 인정하지 않는데, 이에 대한 근거 또한 충분하기 때문이다.

선동열이 처음으로 국보급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가 1986년이다.

39경기 24승 6패 19완투 262이닝 (0.99)


86시즌은 선동열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며 기록 또한 경이로울 정도였다. 이 86년의 선동열에 대해서 장명부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선동열은 일본에서 선발 투수로는 부족하다."

당시에는 장명부의 주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선동열이 일본에 진출한 이후에 동일한 평가를 받게 되면서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87년에는 소화 이닝수가 무려 100이닝이나 감소했는데, 그 이유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았다.

허리 부상, 어깨 부상, 팔꿈치 부상, 무릎 부상, 등등... 결론은 몸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가 당시의 관점에서는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실업 야구 세대인 최동원, 김시진은 선동열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월등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와중에 어우홍 감독이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데,

부상의 원인은 나쁜 투구폼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선동열이 일본에 진출한 이후에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으며, 그 내용도 거의 동일했다는 사실이다.

<참고> 투구폼 메카니즘으로 재평가한 선동열


선동열이 선발 투수로 미달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정상적인 로테이션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관점에서 에이스는 포스트시즌에서 3일 휴식 선발 등판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선동열은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86년을 제외하고는 로테이션 자체가 불가능했다. 더구나 유일했던 86년에도 완전한 실패였다. 물론 정규시즌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스트라이크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규시즌에서 선발 투수 선동열의 투구 패턴은 다음과 같았다.

80년대에는 슬러거들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해태에 가장 많이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선동열에게 위협적인 타자들도 소수에 불과했고, 선동열은 이를 기가막히게 잘 활용했다.

슬러거들을 상대할 때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비중있게 던졌고, 그 외 타자들과의 승부에서는 직구 위주의 투구를 했는데, 한 가운데 들어가는 공도 상당히 많았다. 훗날 이 가운데 공이 사실은 몸쪽에 던진다는 것이 가운데로 몰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 진출 이후에 제구력이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관련하여 김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타석에서 한 발 물러서서 치는 애가 우즈인데 한국에서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왠만하면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데, 일본에서는 그걸 스트라이크로 안 잡아주니 당연히 우즈는 일본에서도 잘 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슬라이더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스트라이크존과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포스트시즌에는 스트라이크존의 좌/우폭이 공 반 개에서 한 개 정도가 줄어들었고, 선발 투수 선동열의 한계가 바로 드러났던 것이다.

실제로 선동열이 선발 투수로 활약한 기간 동안(86 ~ 91년) 무려 8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겨우 2번의 선발승을 기록했는데,

88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첫 선발승을 기록했을 때는 7.1이닝을 투구하면서 119개의 공을 던졌는데 정규시즌에서는 거의 완투했을 정도의 투구수였고, 9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완투승을 기록했을 때는 무려 153개를 던졌을 정도였다. 특히 91년에는 구종 분류까지 자세하게 기사화 되었는데, 전체 투구수 중에서 슬라이더 비율이 겨우 13.7%(21개)에 불과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스트라이크존의 좌/우폭이 최대 공 1개만 줄어도) 선동열은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투수로는 기껏해야 2선발급 이하로 전락했던 것이다. 실제로 86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2번 이상 선발 등판한 시리즈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참고> 선동열 진짜 실력은 포스트시즌 기록


포스트시즌에서 선동열의 투구수가 극단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슬라이더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명품 슬라이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직구 위주의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선발 투수 선동열에게 포스트시즌은 악몽 그 자체였다.

[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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