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on Facility

gminhee.egloos.com

포토로그



선발 투수 선동열을 투구폼 메카니즘으로 재평가한다. 반론


86년에 선동열은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KBO 최고 에이스로 등극한다. 모든 야구 전문가들이 선동열을 최고로 인정했던 것이다. 이 때가 가장 혈기 왕성했던 만 23세였다.

86시즌이 끝나고 주간야구에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하일성과 장명부의 인터뷰 내용이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하일성이 묻기를 선동열이 일본에 간다면 몇 승 정도가 가능하겠나?

장명부가 답변하기를 일본에서 선발 투수로는 부족하다.
(이어서 묻지도 않은 말을 하였다) 하지만 최동원은 지금 당장 가도 확실한 10승 투수다.

하일성이 반응하기를 그게 정말이냐?


하일성이 놀란 반응을 보인 이유는, 최동원은 84년 심각한 혹사로 85년부터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86년부터는 더 이상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2011년 기사).



87년에 선동열은 86년에 비해 무려 100이닝이 감소한 162이닝을 겨우 던지고 시즌을 마친다. 여기서 잠깐 그 시대의 관점에서 메이저리그와 비교해 보면,

(선동열이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기 이전) 86년부터 92년까지 불펜 투수들을 제외한 사이영상 수상자들의 평균 이닝은 무려 258이닝이 넘었다. 최소 231이닝이었고 최대 281이닝이었다.

그 시절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240이닝 이상을 소화하지 못하는 투수는 특급 선발의 자격이 없을 때였다. 물론 선동열이 선발 투수로 활약할 당시의 KBO는 게임수가 108게임(86 ~ 88년), 120게임(89, 90년), 126게임(91년) 이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와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기간으로는 2주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4일 휴식 로테이션을 적용한다고 가정해서 최소한 210이닝 이상은 소화할 수 있어야 했다.

아무튼 87년부터 장명부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고, 어우홍 감독이 선동열의 투구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은 선동열의 투구폼을 12개로 분리한 사진을 분석한 내용이다.


선동열은 투구동작에서 언뜻 눈에 띄는 것이 번의 모습이다.

④⑤⑥ 동작은 몸전체가 잔뜩 휜 활과 같다고 해서 야구용어로 아칭(Arching)이라고 부른다.

상체가 이처럼 휘면 앞어깨(왼쪽어깨)가 일찍 열려 팔꿈치가 처지게 돼 어깨와 팔꿈치가 받는 부담이 커진다. 또 공을 일찍 놓게 돼서 공(특히 커브)을 던진 뒤의 팔로우 드루도 상당히 힘들게 된다.

따라서 피로회복이 늦어져 등판 간격일이 길어지며 투수 생명도 짧아진다. 공을 잡은 손바닥이 일찍 포수쪽을 보게돼
(⑤⑥) 손목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⑦⑧⑨에서 보듯이 공을 놓기 전에 일찍 가슴이 활짝 열려 공을 뿌릴 때는(⑩⑪) 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다. 허리회전의 힘을 최대한 공에 전달한 동작이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공을 던지면 몸에 무리가 가기 쉽다.

선동열은 어느 한 팀의 에이스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대포알 투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투구 동작에 관해 좀 더 세밀히 연구해서 많은 경기에 나가 오래오래 좋은 공을 던져주었으면 싶다.


분석 내용을 자세히 보면 투구폼 자체에서 한 시즌에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발 투수의 투구폼 메카니즘이 아니었으며, 직구+슬라이더 전용 투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상체가 이처럼 휘면 앞어깨(왼쪽어깨)가 일찍 열려 팔꿈치가 처지게 돼 어깨와 팔꿈치가 받는 부담이 커진다. 또 공을 일찍 놓게 돼서 공(특히 커브)을 던진 뒤의 팔로우 드루도 상당히 힘들게 된다. 따라서 피로회복이 늦어져 등판 간격일이 길어지며 투수 생명도 짧아지게 된다. 공을 잡은 손바닥이 일찍 포수쪽을 보게돼 손목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동양인) 남자들의 경우에 만 23세까지가 가장 재생 능력이 좋을 때이다. 다시 말해서 재생 능력이 좋았던 만 23세때는 262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으나, 그 이후 부터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동열은 87년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게 되는데, 다음 부분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공을 놓기 전에 일찍 가슴이 활짝 열려 공을 뿌릴 때는 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다. 허리 회전의 힘을 최대한 공에 전달한 동작이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공을 던지면 몸에 무리가 가기 쉽다.


그렇다면 선동열이 투구폼을 고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실 선동열은 대단한 강견이 아니었다. 타고난 유연성을 이용하여 하체를, 특히 허리 힘을 동반하여 구속을 상승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투구폼에서는 체중이 실리기 때문에 강력한 구위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만약 선동열이 예리한 커브와 투심 등의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하기 위해 투구폼을 수정했다면 KBO에서도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바로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일본 리그에서는 선발 투수로는 부족하다고 장명부가 평가했던 것이다).

<참고> 선동열은 선천적으로 내구력과 파워가 약했다.



- 윤학길과 이강철 -


87년부터 선동열이 진정한 에이스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선동열을 제외하고 에이스 다웠던 투수들은 최동원, 김시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최동원의 경우에는 현재까지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이닝이터였기 때문에 비중있게 비교되지 않았고, 김시진의 경우에는 비슷한 강팀의 에이스였음에도 선동열과 비교해서 아주 크게 이닝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나머지 기록들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87년에 윤학길이 등장하면서 88년부터 선동열이 진정한 에이스인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선동열이 87년부터 3년동안 평균 170이닝 이하를 소화할 때 윤학길은 무려 200이닝 - 234이닝 - 250이닝을 소화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강철은 89년에 입단하자마자 무려 195이닝을 던지면서 해태의 실질적인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초조해진 선동열은 90년에 상당히 많은(?) 190이닝을 소화하는데, 이강철은 무려 30이닝이 더 많은 220이닝을 소화했던 것이다.





그러자 선동열은 91년에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200이닝을 돌파하는데(203이닝), 이로 인해 완전히 드러눕게 되면서 선발 투수 생명이 끝나게 된다. 문제는 투구폼에 있었다. 체력이 일찍 고갈되는 나쁜 투구폼 때문이었다.

선동열은 8~90년대의 (슬라이더에 심각할 정도로 관대한) 몰상식한 스트라이크존 때문에 선발 투수가 가능했던 것이지 슬라이더의 관대함이 대폭 축소되는, 그리고 매 이닝 전력 투구를 해야 하는 포스트시즌에서는 선발 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참고> 선동열 진짜 실력은 포스트시즌 기록


93년부터 불펜 투수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충분히 쉬고 강력한 공을 던질 수 있을 때만 등판했다. 전형적인 마무리 투수가 바로 선동열이었다. 즉 임창용, 김병현, 오승환 등의 마무리 투수들이 선동열의 비교 대상이라는 것이다.



> 반론/의견은 여기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