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野生野死 야구에 죽고 사는 .. | jun970616
당시 고교야구 인기 좋을때라 이 대회는 심야 중계되었는데(실황인지는 기억이 안남) 차마 눈뜨고 봐줄수가 없었다. 최정예가 아닌 한국대표팀 연습 상대도 안되는 수준 상대팀 전력에 필자는 2회 이상 볼수가 없었다.
스웨덴같은 팀은 천하무적 야구단보다 나을게 없는 팀으로 봐도 무방하고
일단 81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MVP가 자랑스러운 경력 아닌 이유 다음과 같다.
1. 선동열 참가 자체가 창피
선동열은 당시 고교생이 아니라 성인리그인 대학리그 반시즌 마친 뒤였다.
선동열과 같은 학년때 최동원 김시진 구대성 등은 국가대표 세계대회 나갔고 81년 동기생 이상군만 해도 선동열이 고교생 대회 참가할 바로 그 시기 대학선발로 미국 대표팀 상대로 한미대학야구 참가하였다.
다음은 증거자료다.
81년 한미대학야구 명단
투수 = 조도연(원광대) 양상문(고려대) 오영일(인하대) 김상기(인하대) 윤학길(연세대) 김봉근(동국대) 이상군(한양대)
포수 = 이만수(한양대) 한문연(동아대)
내야 = 박종훈(고려대) 김경남(인하대) 이선웅(인하대) 김동재(연세대) 박영태(동아대) 오대석(한양대)
외야 = 조성옥(동아대) 김영균(연세대) 김성한(동국대) 김정수(고려대) 김일권(한양대)
보라! 동기 이상군은 버젓이 대학선발 뽑히지 않았나?
야구 못한 선동열은 당시 여기 못 뽑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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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준 떨어지는 선수들이 참가
대회수준은 한국대표팀 명단 보면 나온다.
투수 = 김건우(선린상) 조계현(군산상) 이재홍(신일고) 이효봉(대전고) 선동열(고려대)
포수 = 김동기(인천고) 김상국(북일고)
내야 = 배효욱(대구고) 강기웅(대구고) 구천서(상업은) 임동구(군산상) 김경호(진흥고) 조양근(북일고)
외야 = 임경택(마산고) 노승구(중앙고) 최종태(배문고) 최계영(부산고) 전응천(경남고)
이들은 청소년대표 1진 아니다.
면면 보면 알지만 노승구 최종태 전응천 배효욱 김경호 이들이 누구인가? 아마 당시 동대문 야구장 살던 골수 야구팬들도 이들은 생소할거다. 이들은 그해 전국대회 성적 기초로 한 대표가 아니라 시즌전 야구인들 사이 유망주로 꼽히던 선수들 위주로 선발되어 경기력은 떨어지는 선수들이었다.
대전고 이효봉은 중학때부터 유망주였으나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 전국대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는데도 청소년대표로 뽑혔다.
한일고교야구 참가한 청소년 대표팀과 비교해 보자
투수 = 김건우(선린) 박노준(선린) 김정수(진흥) 이재홍(신일) 차동철(광주일) 조계현(군산상)
포수 = 김상국(북일) 장채근(광상)
내야 = 류중일(경북) 조양근(북일) 강기웅(대구) 김태명(전주) 조영일(선린)
외야 = 임경택(마산) 이경재(선린) 이상명(청주) 최무영(경북)
이들이 진정한 청소년대표 아닌가?
1진 아닌 한국팀에게 완패당한 당시 상대팀들 수준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선동열 커리어에서 81년 청소년 대회 참가는 자랑스러운게 아니다. 일단 선동열은 대회 참가자 중 유일한 대학선수였고 대회 수준도 이후 대회 정착된 때와는 차이 나는 질 낮은 대회였다.
<참고> 선동열 과대포장은 고교시절부터 시작되었다.
81년에 선동열이 참가한 IBAF AAA World Junior Championships는 만 18세 이하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이다. 그런데 선동열의 실제 생일이 62년 10월이라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선동열은 이 대회에 부정 참가한 것이 된다.

